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이다. [헤드라인제주]는 길 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나누고 모두가 길 위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소망을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타이틀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 다시 쓰는 올레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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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0~21일 오후 제주올레 7코스에서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 연이틀 계속 펼쳐졌다. 7코스 해안 절경의 아름다움이야 올레꾼들이라면 다들 인정하는 바. 허나 이 이틀간의 아름다움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인간이, 그것도 천사나 다름없는 어린이들이 자연과 어우 바다이야기무료 러져 빚어낸 아름다움이었으니까.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면서, 주최 단체도 한국청년회의소 서귀포지회에서 제주특별자치도로 바뀌어 글로벌 축제로 확대된 펠롱펠롱 제주올레 어린이걷기축제! 지난 해 봄 첫 시도에 반향이 워낙 컸던지라 제주도청에서도 올 축제부터는 적극 지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걷기 좋은 자연 환경에 릴게임야마토 서 사는 제주도 어린이들의 소아 당뇨, 소아 비만율이 전국에서 최상위권이라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행정, 교육청, 지역 단체, 제주올레가 문제의식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던 것!
야심차게 준비한 축제의 전야는 불안과 공포를 자아낼 정도였다. 거센 빗줄기가 밤늦게까지 쏟아지고, 천둥과 벼락까지 쳐댔다. 행사 당일 내릴 비를 미리 당겨서 다 내린 것이 골드몽게임 려니 애써 자위하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가 일어나보니,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여전히 거센 빗줄기가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어른들 축제라면 날씨 걱정을 이 정도로는 하지 않는 편. 예전 초창기 제주올레걷기축제 때 사흘 내리 비 맞으면서 천여 명이 걸은 적도 있었으니까!
허나 참가자들은 유아, 초 손오공게임 등생 사전 신청자 8백여명과 그 아이들을 챙기면서 함께 걸을 그 비슷한 규모에 이를 부모와 지도 선생님들! 폭우를 맞으며 이들을 아스팔트도 아닌 너덜너덜 바당길을 걷게 하는 건 건강, 안전 두 측면에서 다 무리한 일. 때문에 취소해야 하나 기다려봐야 하나 행사 관계자들은 고민을 거듭했다.
아, 그러나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고, 손지들을 무한 아끼는 설문대할망은 자애롭기 그지 없었다. 11시부터 비가 거짓말처럼 뚝 그치는가 싶더니, 서귀포 전역의 하늘은 말갛게 세수한 얼굴을 드러냈다. 오후 1시부터 월드컵경기장으로 모여서 마련된 부스를 둘러보고, 보드게임도 하고, 공연도 관람한 뒤 개막식을 갖고 2시부터 출발하기로!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걷는 아이들 따라 어른들도#
경기장 입구 너른 광장은 각종 부스들과 구경하고 놀이하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깔깔대는 웃음소리로 모처럼 잔치마당 같았다.
펠롱펠롱은 어린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리킬 때 쓰는 제주어. 아직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어린이의 눈동자에게만 쓰이는 형용사다.

그랬다. 행사 이름에 걸맞게 아이들은 펠롱펠롱한 눈을 빛내면서 또래의 춤과 음악 공연에 박수로 맞장구를 치고 보드게임에 열중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개막을 선언하고, 축하사절인 제주도지사와 교육감을 소개하고, 내빈들을 단상으로 불러내서 개막 테이프를 풀게 하는 그 모든 일은 3명의 어린이 사회자들이 맡아 훌륭하게 해냈다. 심지어 올해부터 참가한 대만, 일본 참가자들을 위해 영어 통역까지도! 어린이의 유창한 영어 발음이 부러웠던 건 비단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여기저기서 감탄의 소리가 들려왔다.







드뎌 오후 2시 리본 풀기가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과 보호자들은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길은 도심 한복판 너른 아스팔트와 최첨단 경기시설을 지나면서 점점 소박한 풍경을 드러냈다. 오래된 갯마을 법환포구로 내려가는 좁은 마을길을 나란히 줄지어 가던 어린이들과 보호자들은 가다가 맞춤할 쉴 곳이 보이면 군데군데 흩어져서 쉬고 있었다. 마을을 지키는 폭낭ㅡ팽나무ㅡ그늘 아래, 오늘 자기네 정원을 활짝 개방한 마을 카페 잔디밭에, 초등학교 근처 쉼터에. 이도저도 안되면 그저 길가에 앉아서!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정겨운지! 노인분들만 주로 사는 이 마을이 모처럼 큰 잔치손님, 그것도 꼬마 손님들이 와글거리는지라 동네 삼촌들은 사람 구경하느라고 벙싯벙싯. 새삼 이런 잔치를 허락해주신 하늘에 감사하면서 발걸음을 푸른 바닷물 넘실대는 법환포구로 옮겼다.​

#뮤지컬, 이중주, 어린이 국악공연...제주에 어린이 재주꾼들이 이리 많을 줄이야#





바닷가 입구에 조성된 쉼터에 참가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앗 어린이 무용단 뮤지컬 공연이다. 군무와 독무, 합창과 독창을 번갈아 가면서 연기를 펼치는 어린이들의 기량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저런 수준에 이르려면 얼마나 혹독한 연습을 했을까 걱정도 됐지만, 너무나도 즐거워 보이는 출연자들 표정에 그 걱정마저 사르르 녹아내렸다.

법환포구를 지나 핫플로 꼽히는 벙커하우스 앞! 여기에서 속골로 이어지는 구간은 눈부신 바다절경을 누리기 위해서는 울퉁불퉁한 몽돌 바윗길을 건너야만 했다. 어른들은 얼마든지 건너가지만, 유아원 어린이들까지 참가하는 축제이니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제주올레 탐사대와 그린리더팀이 몇날며칠을 와랑와랑 여름 햇살 아래 구슬땀 흘려가면서 엎어져서 작업한 끝에 비단길로 바꿔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 걸어보니 과거에 견주면 비단길! 미래의 역군 아이들을 위해 그 수고로움을 불평 없이 감내한 그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속골에서는 두 어린 소녀의 연주가 펼쳐졌다. 바이올린과 기타의 이중주! 사뭇 다른 악기인데도 둘의 호흡이 어찌나 잘 맞고, 앵콜이 쏟아질 때마다 레파토리는 또 얼마나 다양하게 달라지는지! 나도 모르게 '아니 제주에 이런 어린이 재주꾼들이 이리 많은 줄 미처 몰랐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지난해 어린이 축제 때는 해외출장중이라서 소문만 들었을 뿐. 직접 참가해보니 놀라운 기량들이었다.

​그 감탄은 다음날 돔베낭길 입구 정자에서 펼쳐진 어린이 국악 풍물공연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정자 안에는 10여명의 북과 장구를 들고 전통복장을 딱 차려입은 초등 남녀 학생들이 좌정해 있었다. 그들은 판소리 사설을 서로 주고 받으며 흥겹게 북장단을 쳤고, 정자 앞에서는 상모를 기막히게 돌리는가 하면 하늘로 팽이를 올렀다 받는 신기한 재주도 선보였다. 케데헨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는 k팝 못지않게 k국악이 지닌 잠재력도 무궁무진해보였다. 이미 이날치 등이 첫발을 내디뎠지만 이 친구들이 그 뒤를 이어가리라!










공연 못지 않은, 그보다 더한 감동은 역시 아이들의 걷기였다. 요즘 아이들이 걷기 싫어한다, 누가 요즘 걷겠냐는 건 어른들의 편견이고 오해였음을 아이들은 몸으로 증명했다.
아이들은 나비처럼 팔랑팔랑,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다. 어른들이 외려 아이들을 따라가느라 버거워보일 만큼!
한 엄마가 멋적은 표정으로 내게 하는 말! "이상해요. 엄마랑 둘이만 걸으면 짜증내고 업어달라고 하고 차 타자고 하는데 또래랑 걸으니까 뒤도 안 돌아보고 저렇게 걷네요! ㅋㅋ 키즈카페에서 놀다가도 조금 지나면 지겨워하는데, 올레길이 키즈카페보다 백번 나아요!"

그러니 아이들끼리 어울려 길을 걷는 기회를 어른들이 자주 만들어주시라고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보육센터 천사 선생님과 천사 아이들#
둘쨋날 오후. 날씨는 살짝 바람까지 불어 더 걷기 좋은 날! 어제 발길을 멈추었던 서귀포여고부터 시작해서 제주올레의 거점인 제주올레여행자 센터까지 가는 여정이다. 월드컵경기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 근처에 내린 참가자들은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돔베낭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가는 길에 누가 꾸벅 인사를 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마주쳤던 귀여운 소녀들이다. 물어보니 초딩 2학년이라고 했었다. 둘다 아래에 주머니가 달린 패션 바지에 올레 모자를 썼다. 꽤나 엄마가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집이로구나 생각될 정도였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뒤 그 둘은 또 손에 손을 잡고 나비처럼 팔랑거리면서 저 앞으로 날아가버렸다.​
그렇게 헤어진 두 아이를 다시 만난 건 돔베낭길 끄트머리 메리어트 호텔 앞 나무그늘과 벤치 앞에서였다. 소녀들은 두 아주머니들과 함께 무언가 먹고 마시던 중이었다. 그 아주머니 중 한 분이 내게 레몬차를 드시겠느냐고 권유했다. 마침 목 마르던 참인지라 냉큼 옆자리에 끼어들었다.
차를 마시면서 소녀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두 귀여운 소녀와 두 아주머니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할머니라기엔 너무 젎고, 엄마라기엔 좀 그런! 두 분은 동갑 친구라기에 아아 두 분 다 늦둥이를 낳았나 보다 지레짐작했다. 아이들이 너무 이뻐서 같이 사진을 찍은 뒤에 전번을 주면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나로서도 그닥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 나중에 사진과 함께 그분의 긴 문자 메시지를 받고서야 난 저간의 사정을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그 아주머니들은 제주시 화북 근처 홍익아동복지센터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었다. 걷기 복장을 잘 차려입은 아이들은 그 센터에서 생활하는 보호 아동들이었고. 6.25전쟁 직후 고아원으로 출발해서 시대환경에 따라 명칭을 달리해온 홍익재단은 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부모의 건강이나 가정 환경 때문에 양육할 형편이 안되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양육기관.
나는 그 사실을 알고나자 더욱 궁금해져서 내게 사진을 보내온 문정순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감동의 쓰나미 물결을 내게 안겨다 주었다. 본디 제주 토박이인 문선생님은 올레길을 알고는 있었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단다. 허나 육지 출신 동료 교사가 올레길 완주에, 오름에, 모든 길을 섭렵하고 제주에 대해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가는 걸 보면서 슬며시 질투와 부끄러움이 동시에 들더란다. 그래서 올레길에 입문하면서 제주의 속살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그 길의 매력에 빠져 두 번이나 완주를 하게 되었더란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도 이 길을 걷게 하고 싶어서 패스포트를 사주고 걷기 시작했더란다. 지금 2학년인 이 두 소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완주를 다하도록 동행하는 게 꿈이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센터에서 형편 닿는 대로 신발, 바지, 모자 한 가지씩 장만해주는 중이란다. 내가 감탄했던 멋진 패션 바지가 바로 그중 하나였던 모양.
그녀의 절절한 소망과 돌봄 아동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순간, 나는 펠롱펠롱 어린이걷기축제가 가져다준 또 다른 선물에 감사했다.
이렇게 길은 인연을 낳고, 또 그 인연은 인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 세대가 낸 길은 이번 축제 때 이 길을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누볐던 이 아이들에게 이어지고 보존되고 그 후대에 이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