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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를 발목잡는 기업. 정부의 인위적 구조조정이 만든 대표적 실패 사례.
약 25년 전 한 기업에 쏟아졌던 비난입니다. 주인공은 바로 지금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 SK하이닉스입니다. SK하이닉스의 주가는 2000년대 초반 한때 125원까지 떨어져서 '국민 동전주(1000원 이하의 주식을 일컫는 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증자, 분할 등을 감안한 현재 주가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2600원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주가는 약 230배 올랐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6년 대비해서도 20배나 올랐습니다.
25년 전만 해도 도저히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바다신2게임 않던 최악의 기업이 지금은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기업, 직원 1인당 1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회사가 됐습니다. 대체 SK하이닉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이닉스의 전신은 1983년 설립된 현대전자입니다. 초기 현대전자는 지금의 삼성전자처럼 반도체부터 완성제품까지 여러 가지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휴대전화, 컴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퓨터는 물론 맥스터라는 회사를 인수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까지 만들었죠.
하지만 1998년 IMF 외환위기로 국내 산업별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는데요. 반도체 기업 중 1위 삼성전자를 제외한 현대반도체와 LG반도체가 구조조정 대상에 오릅니다. 1998년 정부의 '빅딜' 작업에 따라 현대반도체가 살아남고, LG반도체를 인수하는데요. 바다이야기하는법 이때 인수를 위해 짊어진 엄청난 부채로 인해 현대전자는 2000년 부도 위기에 빠집니다. 2001년 당시 회사는 4조원의 매출을 냈는데, 적자는 5조원에 달했고, 부채는 7조원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당시의 반도체 가격과 하이닉스의 재무구조로는 매년 수조 원의 적자를 내는 것은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당시 '왕자의 난'으로 조각조각난 알라딘릴게임 현대그룹이 현대전자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하이닉스'가 2001년 출범합니다. 새롭게 출범한 하이닉스의 최우선 목표는 '해외 매각'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1998년 외환위기 영향으로 기업 재무구조 건전화와 시장 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이 절대적인 진리였던 상황.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하락시키는 하이닉스를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 전 바다이야기예시 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습니다.
2002년 4월 당시 하이닉스 경영진은 마이크론과 협상을 통해 회사를 약 40억달러, 당시 환율로 4조원가량 되는 금액에 매각하는 안을 이사회에 가져왔지만 이사회가 이 안을 부결시킵니다. 경영진과 이사회, 노조가 독자생존에 한뜻을 모았다고 하죠. 결국 하이닉스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하이닉스에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이 출자전환을 통해 주주가 됩니다.
2002년부터 하이닉스는 은행 출신의 대표가 이끌게 됩니다.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비용절감과 인력감축이 이뤄졌고 그 결과 하이닉스는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불과 3년 만에 워크아웃 졸업에 성공합니다. 세계 시장점유율에서도 마이크론을 제치고 2위로 올라갑니다.
물론 당시의 하이닉스가 그대로 살아남은 것은 아닙니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사업부는 전부 분할해서 매각됐는데요. 디스플레이(LCD) 사업부는 하이디스로 분리된 후 중국 BOE에 매각됐고, 후공정패키징 부문도 해외에 매각돼 스태츠칩팩코리아가 됐습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매그나칩으로 분리돼 미국 사모펀드에 매각됐습니다. 이 중 어떤 회사는 기술만 빼앗긴 후 사라졌고, 어떤 회사는 살아남았습니다.
메모리 사업 부문만 남은 하이닉스. 하지만 그 운명은 위태로웠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시장 가격에 따라서 호황과 불황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갔는데 막강한 생산능력과 투자여력을 가진 업계 1위 삼성전자가 아니면 2위인 하이닉스도 돈을 벌기 쉽지 않았습니다. 반도체를 팔아서 번 돈으로 투자하는 것은 어렵고, 주주인 은행들이 본업도 아닌 하이닉스에 추가 투자할 수도 없었습니다. 2000년대 말부터 D램 가격이 10분의 1로 떨어지는 '2차 치킨게임'이 벌어지자 하이닉스는 다시 한번 망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주가는 67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노사불이(노조와 회사는 둘이 아니다)'라는 하이닉스의 구호는 이런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등장했습니다.
채권단에 원금을 돌려주고 정상적인 지배구조로 가기 위해서라도 채권단 지분 매각이 필요했는데요. 2008년부터 진행된 매각 작업에서 최종 인수 후보는 SK그룹과 STX그룹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인수·합병(M&A) 전문가였던 SK그룹이 하이닉스를 거머쥐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결단이 이뤄졌습니다. 그는 인수가 사실상 확정된 2011년 11월 이천 본사를 찾아서 "SK그룹 회장으로 하이닉스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은 하이닉스에 크게 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첫 번째는 재무적인 효과였습니다. 당시 SK하이닉스의 인수주체는 국내에서 가장 현금 창출력이 뛰어난 1위 이동통신회사 SK텔레콤. 이 덕분에 SK하이닉스는 신용등급이 올라가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집니다. 또 인수과정에서 SK그룹은 2조3000억원 규모 신주인수를 통해 SK하이닉스에 자금을 투입합니다. 이를 통해 회사는 2012년 4조원, 2013년 2조원 등 설비투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는 기업문화인데요. 은행에서 SK그룹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내부의 엔지니어 출신이 처음으로 SK하이닉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박성욱 전 SK그룹 부회장입니다. 그는 지금 SK하이닉스의 엔지니어 중심 기업문화를 만든 리더로 꼽힙니다. 기술 개발과 투자에 대해서 '톱팀'이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각 부서가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SK하이닉스는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아주 다른 회사가 됩니다. 현대전자, LG반도체, SK그룹의 문화가 뒤섞여서 신뢰와 협력의 문화가 만들어졌고, 이는 엔지니어들이 기술에 대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됩니다.
지금은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 2025년 2분기 기준 SK하이닉스가 D램 세계 1위가 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제품입니다. HBM이 일반 D램에 비해 가격이 5배나 높기 때문에 엔비디아에 공급되는 HBM3E 제품의 75%를 독식한 SK하이닉스가 이를 공급하지 못하는 삼성전자를 꺾고 D램 시장 1위를 차지한 것이죠. 그런데 이 HBM이 빛을 보는 데는 자그마치 10년이 걸렸습니다.
HBM은 2013년 SK하이닉스가 전 세계에서 최초로 만든 제품입니다. 당시 고객사였던 AMD가 하이닉스에 D램을 적층해서 쌓는 제품을 요청했고, 하이닉스는 콘셉트만 존재했던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AMD에 납품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HBM은 지금처럼 AI(인공지능) 반도체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었는데요. AMD의 게임용 그래픽카드가 실패하면서 HBM은 사실상 실패한 제품이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HBM 기술의 주도권은 SK하이닉스가 아닌 삼성전자로 옮겨갑니다. 하이닉스가 당시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자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수주를 전량 가져가게 된 것입니다. 이때 삼성전자의 HBM2가 탑재된 제품은 2016년 나온 엔비디아의 P100 GPU인데요. 엔비디아는 기존에 쓰이던 GDDR 대신 HBM2를 탑재해 AI 학습속도를 크게 높였고, HBM은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자신들이 최초로 만든 제품인데 그 주도권을 1위 기업에 빼앗긴 거죠.
그런데 SK하이닉스에 의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2018년 삼성전자가 갑자기 HBM팀을 축소한 것입니다. 당시 1등 기업이 사업에서 물러나면서 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HBM에 대한 회의론이 나옵니다.
HBM은 일반적인 D램의 3배 웨이퍼를 소모하는 애물단지 같은 제품이었습니다. 엔비디아에 납품을 한다고 해도 기대되는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 중심 조직이었던 SK하이닉스는 HBM이 AI 학습에 필수적이고 결국에는 큰 시장을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결국 SK하이닉스는 당시 엔비디아의 요구에 맞춰 차세대 HBM 개발에 성공하고 HBM3부터는 엔비디아의 주력 공급사가 됩니다.
2022년 11월 챗GPT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엔비디아도 SK하이닉스도 AI반도체 시장이 폭발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023년 엔비디아에 GPU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HBM 생산량을 맞출 수 있는 회사는 일찍부터 준비를 해놓은 SK하이닉스뿐이었습니다. 2023년 7조원 손실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2024년 23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해는 42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에 대한 믿음으로 10년간을 버텨온 엔지니어들의 노력이 HBM의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HBM 신화의 숨겨진 주역 중 한 사람은 최초 HBM 개발 설계팀장이었던 이재진 팀장입니다. 그는 최초 개발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HBM 제조에 MR-MUF 공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로드맵을 처음부터 제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공정은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간 사이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SK하이닉스 HBM의 발열이 낮은 비결이기도 합니다. 초기 HBM이 실패했지만 후배 엔지니어들이 계속 HBM을 개발했고 MR-MUF 기술 개발에도 성공합니다. HBM이 엔지니어들의 10년에 걸친 피와 땀으로 성공시킨 제품인 이유입니다.
전자만사는 반도체부터 시작해 스마트폰, TV, AI를 작동시키는 데이터센터까지 전자산업의 모든 이슈를 쉽고 가볍게 다룹니다.
이덕주 기자
[이덕주 기자] 기자 admin@slotmega.info
약 25년 전 한 기업에 쏟아졌던 비난입니다. 주인공은 바로 지금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 SK하이닉스입니다. SK하이닉스의 주가는 2000년대 초반 한때 125원까지 떨어져서 '국민 동전주(1000원 이하의 주식을 일컫는 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증자, 분할 등을 감안한 현재 주가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2600원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주가는 약 230배 올랐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6년 대비해서도 20배나 올랐습니다.
25년 전만 해도 도저히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바다신2게임 않던 최악의 기업이 지금은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기업, 직원 1인당 1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회사가 됐습니다. 대체 SK하이닉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하이닉스의 전신은 1983년 설립된 현대전자입니다. 초기 현대전자는 지금의 삼성전자처럼 반도체부터 완성제품까지 여러 가지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휴대전화, 컴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퓨터는 물론 맥스터라는 회사를 인수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까지 만들었죠.
하지만 1998년 IMF 외환위기로 국내 산업별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졌는데요. 반도체 기업 중 1위 삼성전자를 제외한 현대반도체와 LG반도체가 구조조정 대상에 오릅니다. 1998년 정부의 '빅딜' 작업에 따라 현대반도체가 살아남고, LG반도체를 인수하는데요. 바다이야기하는법 이때 인수를 위해 짊어진 엄청난 부채로 인해 현대전자는 2000년 부도 위기에 빠집니다. 2001년 당시 회사는 4조원의 매출을 냈는데, 적자는 5조원에 달했고, 부채는 7조원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당시의 반도체 가격과 하이닉스의 재무구조로는 매년 수조 원의 적자를 내는 것은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당시 '왕자의 난'으로 조각조각난 알라딘릴게임 현대그룹이 현대전자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하이닉스'가 2001년 출범합니다. 새롭게 출범한 하이닉스의 최우선 목표는 '해외 매각'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1998년 외환위기 영향으로 기업 재무구조 건전화와 시장 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이 절대적인 진리였던 상황.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하락시키는 하이닉스를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 전 바다이야기예시 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습니다.
2002년 4월 당시 하이닉스 경영진은 마이크론과 협상을 통해 회사를 약 40억달러, 당시 환율로 4조원가량 되는 금액에 매각하는 안을 이사회에 가져왔지만 이사회가 이 안을 부결시킵니다. 경영진과 이사회, 노조가 독자생존에 한뜻을 모았다고 하죠. 결국 하이닉스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하이닉스에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이 출자전환을 통해 주주가 됩니다.
2002년부터 하이닉스는 은행 출신의 대표가 이끌게 됩니다.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비용절감과 인력감축이 이뤄졌고 그 결과 하이닉스는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불과 3년 만에 워크아웃 졸업에 성공합니다. 세계 시장점유율에서도 마이크론을 제치고 2위로 올라갑니다.
물론 당시의 하이닉스가 그대로 살아남은 것은 아닙니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사업부는 전부 분할해서 매각됐는데요. 디스플레이(LCD) 사업부는 하이디스로 분리된 후 중국 BOE에 매각됐고, 후공정패키징 부문도 해외에 매각돼 스태츠칩팩코리아가 됐습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매그나칩으로 분리돼 미국 사모펀드에 매각됐습니다. 이 중 어떤 회사는 기술만 빼앗긴 후 사라졌고, 어떤 회사는 살아남았습니다.
메모리 사업 부문만 남은 하이닉스. 하지만 그 운명은 위태로웠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시장 가격에 따라서 호황과 불황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갔는데 막강한 생산능력과 투자여력을 가진 업계 1위 삼성전자가 아니면 2위인 하이닉스도 돈을 벌기 쉽지 않았습니다. 반도체를 팔아서 번 돈으로 투자하는 것은 어렵고, 주주인 은행들이 본업도 아닌 하이닉스에 추가 투자할 수도 없었습니다. 2000년대 말부터 D램 가격이 10분의 1로 떨어지는 '2차 치킨게임'이 벌어지자 하이닉스는 다시 한번 망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주가는 67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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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은 하이닉스에 크게 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첫 번째는 재무적인 효과였습니다. 당시 SK하이닉스의 인수주체는 국내에서 가장 현금 창출력이 뛰어난 1위 이동통신회사 SK텔레콤. 이 덕분에 SK하이닉스는 신용등급이 올라가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집니다. 또 인수과정에서 SK그룹은 2조3000억원 규모 신주인수를 통해 SK하이닉스에 자금을 투입합니다. 이를 통해 회사는 2012년 4조원, 2013년 2조원 등 설비투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는 기업문화인데요. 은행에서 SK그룹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내부의 엔지니어 출신이 처음으로 SK하이닉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 박성욱 전 SK그룹 부회장입니다. 그는 지금 SK하이닉스의 엔지니어 중심 기업문화를 만든 리더로 꼽힙니다. 기술 개발과 투자에 대해서 '톱팀'이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각 부서가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SK하이닉스는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아주 다른 회사가 됩니다. 현대전자, LG반도체, SK그룹의 문화가 뒤섞여서 신뢰와 협력의 문화가 만들어졌고, 이는 엔지니어들이 기술에 대해서 토론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됩니다.
지금은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 2025년 2분기 기준 SK하이닉스가 D램 세계 1위가 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제품입니다. HBM이 일반 D램에 비해 가격이 5배나 높기 때문에 엔비디아에 공급되는 HBM3E 제품의 75%를 독식한 SK하이닉스가 이를 공급하지 못하는 삼성전자를 꺾고 D램 시장 1위를 차지한 것이죠. 그런데 이 HBM이 빛을 보는 데는 자그마치 10년이 걸렸습니다.
HBM은 2013년 SK하이닉스가 전 세계에서 최초로 만든 제품입니다. 당시 고객사였던 AMD가 하이닉스에 D램을 적층해서 쌓는 제품을 요청했고, 하이닉스는 콘셉트만 존재했던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AMD에 납품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HBM은 지금처럼 AI(인공지능) 반도체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었는데요. AMD의 게임용 그래픽카드가 실패하면서 HBM은 사실상 실패한 제품이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HBM 기술의 주도권은 SK하이닉스가 아닌 삼성전자로 옮겨갑니다. 하이닉스가 당시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자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수주를 전량 가져가게 된 것입니다. 이때 삼성전자의 HBM2가 탑재된 제품은 2016년 나온 엔비디아의 P100 GPU인데요. 엔비디아는 기존에 쓰이던 GDDR 대신 HBM2를 탑재해 AI 학습속도를 크게 높였고, HBM은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자신들이 최초로 만든 제품인데 그 주도권을 1위 기업에 빼앗긴 거죠.
그런데 SK하이닉스에 의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2018년 삼성전자가 갑자기 HBM팀을 축소한 것입니다. 당시 1등 기업이 사업에서 물러나면서 SK하이닉스 내부에서도 HBM에 대한 회의론이 나옵니다.
HBM은 일반적인 D램의 3배 웨이퍼를 소모하는 애물단지 같은 제품이었습니다. 엔비디아에 납품을 한다고 해도 기대되는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 중심 조직이었던 SK하이닉스는 HBM이 AI 학습에 필수적이고 결국에는 큰 시장을 만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결국 SK하이닉스는 당시 엔비디아의 요구에 맞춰 차세대 HBM 개발에 성공하고 HBM3부터는 엔비디아의 주력 공급사가 됩니다.
2022년 11월 챗GPT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엔비디아도 SK하이닉스도 AI반도체 시장이 폭발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023년 엔비디아에 GPU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HBM 생산량을 맞출 수 있는 회사는 일찍부터 준비를 해놓은 SK하이닉스뿐이었습니다. 2023년 7조원 손실을 기록한 SK하이닉스는 2024년 23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올해는 42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에 대한 믿음으로 10년간을 버텨온 엔지니어들의 노력이 HBM의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HBM 신화의 숨겨진 주역 중 한 사람은 최초 HBM 개발 설계팀장이었던 이재진 팀장입니다. 그는 최초 개발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HBM 제조에 MR-MUF 공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로드맵을 처음부터 제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공정은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간 사이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SK하이닉스 HBM의 발열이 낮은 비결이기도 합니다. 초기 HBM이 실패했지만 후배 엔지니어들이 계속 HBM을 개발했고 MR-MUF 기술 개발에도 성공합니다. HBM이 엔지니어들의 10년에 걸친 피와 땀으로 성공시킨 제품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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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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