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자동차공장 아카이빙 전시 ‘모터타임즈’ 관람기
예술의 불빛으로 다시 깨어난 한국지엠 부평2공장
‘모터타임즈’ 프로젝트, 예술·노동·지역이 함께 만든 기록
60년 산업유산 부평공장, 건축가 나상진 설계 재조명







한국지엠 부평2공장에서 열린 ‘모터타임즈’ 가운데 차체공장 설비를 활용해 설치·전시된 양정욱 작가의 ‘빛을 만드는 모양’. 설비 안팎 바다이야기슬롯 에서 반짝이는 빛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2025.11.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지난 7일 오후 4시 30분께 인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2공장 차체공장. 어둠이 짙은 멈춰 선 공장에서 불빛들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바다신게임 양정욱 작가가 공장 내 자체공정 시설을 활용해 설치한 작품 ‘빛을 만드는 모양’ ‘속삭이는 모양’ ‘희망의 모양’이 내는 불빛들이었습니다. 양정욱의 키네틱 아트가 만들어 내는 고요한 움직임과 소리는, 과거 불꽃이 튀고 땀내가 나는 역동적 노동 현장이었던 이곳 차체 공장을 경건한 분위기로 바꾼 듯합니다. 이 같은 예술 작업이 공장을 다시 움직이게 하지 않 바다이야기 았다면, 공장에 남아 있는 것은 공허한 어둠뿐이었겠죠.
양정욱 작가는 야간 경비원, 주차 안내원, 아버지, 친구 등 주변의 사람들과 일상의 이야기로부터 작업을 시작해, 그 이야기를 나무·실·모터 등을 이용한 유기적 구조물의 움직임에 투영하곤 합니다. 그의 작업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돼 주목받고 있습니다.
야마토게임방법양정욱 작가는 한국지엠 부평2공장에 설치한 작품에 대해 “차체를 만들기 위해 용접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꽃에 영감을 받아 설비에 조명을 설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 불빛들이 이곳 현장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며 공장을 돌렸던 노동자들의 ‘생령’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무속적 의미는 아닙니다.
양정욱 작가가 노트에 적어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매달아 놓은 글귀가 눈에 밟힙니다. “기계가 쉬는 밤이 되면 사람이 쉰다 / 돌아가는 길에 창밖을 바라보면 / 낮에 일하던 빛은 밤에도 일한다 / 나는 그 빛이 가여워서 / 등을 돌려 버리지만 / 그래도 안 볼 수 있나 / 크리스마스에” (양정욱 작가노트)



한국지엠 부평2공장 조립공장 내 컨베이어벨트에 전시된 김은희 작가의 드로잉. 드로잉이 있는 자리는 노동자가 일하던 그 자리다. 경인콜렉티브 오석근 작가가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2025.11.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한국지엠 부평2공장 조립공장에 전시된 오석근 작가의 ‘배치와 재배치-120초’.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자의 움직임을 0.1초 단위로 통제하는 장치를 실제 시간 단위로 표현한 작품이다. 2025.11.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이날 부평구문화재단과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가 공동 주최하고 경인콜렉티브가 주관한 부평자동차공장 아카이빙 전시 프로젝트 ‘모터타임즈’ 2부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모터타임즈’ 2부는 한국지엠 부평2공장 조립공장과 차체공장에서 진행 중입니다.
대규모 완성차 공장 내에서 진행되는 ‘초유의 전시’이므로 평일에는 공장에 진입해 관람할 수 없네요. 금요일과 주말 사이 사전 신청자에 한해 전시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달 16일까지였던 전시는 23일까지로 연장됐다고 합니다. 지역사회는 물론 예술계에서도 화제가 된 전시입니다.
프로젝트 추진 과정과 전시 내용·의미는 경인일보에서 ‘한국지엠 아카이빙 프로젝트’란 제목의 시리즈로 5차례에 걸쳐 다룬 바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60년 산업유산 가치도 재조명
이날 전시 관람은 다른 회차와는 조금 다르게 경인콜렉티브 이의중 건축가가 부평2공장 주변을 관람객들과 함께 돌며 공장의 건축적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평2공장은 새나라자동차가 1962년 건립한 한국 최초의 현대식 완성차 생산공장입니다. 이 공장은 60년 넘는 세월 동안 신진자동차, 새한자동차, 대우자동차를 거쳐 현재 한국지엠(전 지엠대우)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공장 건축과 관련된 아카이브도 자체공장에서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공간이 도대체 어떤 의미이고, 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1963년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도록에서 1962년 국전에 출품된 부평2공장 도면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현대 건축가 나상진(1923~1973) 선생이 이 공장을 설계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이의중 건축가)



한국지엠 부평2공장 차체공장 내 전시된 공장의 건축 역사 관련 아카이브를 관람객들이 살피고 있다. 2025.11.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차체공장에 앞서 둘러 본 부평2공장 조립공장에서는 오석근 작가가 공장 내부 공간과 시설을 탐구한 사진과 설치 작품, 2022년 11월 멈춘 부평2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된 차종 ‘트랙스’를 지엠 노동자들이 거꾸로 완전히 해체한 ‘Re: Assy’, 김은희 작가가 노동자가 있던 텅 빈 공간에 다시 노동자의 모습을 드로잉해 넣은 ‘플랜트그라피-컨베이어’ 등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자체공장 내 전시장 쉼터에 마련된 민운기 작가의 노동자 방석, 김은희·진수진 작가의 부평공장 드로잉 ‘플랜트그라피_모터피아’도 인상 깊었습니다.
‘모터타임즈’는 단순히 전시명만은 아닙니다. 경인콜렉티브는 아카이빙 진행 중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와 함께 간행물 ‘모터타임스’를 발행해 그 공간의 사람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모터타임즈’ 1호에 실린 윤용신 한국지엠지부 수석부지부장의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이 눈길을 끕니다. 그는 입사 32년차라고 합니다. “옛날을 기억하자는 게 아니에요. 기록은 미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용신)
■ 지역·예술·노동 함께 만든 기록
대기업 공장 문을 열어 아카이빙과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역문화재단을 비롯한 지역사회와 노조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측이 수용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겠죠.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한 부평구문화재단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단은 ‘문화도시 부평’ 사업의 일환으로 2019년 애스컴시티 프로젝트 ‘소리로 기억하는 도시 부평신촌’, 2021~2022년 만화부평사 ‘1945 부평 조병창 이야기’, 2023년 부평 상업 공간의 1990~2000년대 기록 ‘응답하라 Y2K 부평’ 등 지역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아카이브하는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한국지엠 부평2공장 조립공장에서 ‘모터타임즈’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Re: Assy’. 2022년 가동이 중단된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한 차종인 트랙스를 해체해 재배치한 모습이다. 자동차를 조립하던 공장에서 역으로 지엠 노동자들이 직접 차를 해체했다. 2025.11.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재단은 지난해부터 ‘문화도시 부평’ 마지막 해인 올해까지 경인콜렉티브, 한국지엠 노조와 함께 ‘자동차공업도시 부평 아티스틱 리서치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습니다. ‘모터타임즈’는 그 결과입니다. 지난해에는 리서치를, 올해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모터타임즈’를 진행했습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부평이라는 도시의 과거를 단순히 복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과 해석을 제시하는 예술적 실천으로 기록하는 사업입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을 중심으로 문화도시 부평의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키면서 동시대 미학적 관점에서 구체화하고 재조직하는 예술기록 전시입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부평2공장 내부 곳곳에 걸려 있는 벽걸이 달력(대부분 지엠신협 증정 달력)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모든 달력이 2022년 11월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공장이 멈춘 그 시간입니다.
멈춰 선 공장에서 불빛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불빛들을 쫓아 공장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 아무도 없었던 공장에 숨을 불어 넣었습니다. 전시를 관람한 이들 누구나 이 공간에서 다시 노동자들이 숨쉬며 공장 안의 불을 환하게 밝힐 날을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지엠 부평2공장 곳곳에 걸려 있던 달력 가운데 하나. 공장 가동이 멈춘 2022년 11월을 가리키고 있다. 2025.11.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한국지엠 부평2공장 자체공장 내 전시된 대형 드로잉 작품(‘플랜트그라피_모터피아’)을 관람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2025.11.7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